젠슨 황 엔비디아 CEO,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최태원 회장 인스타그램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을 앞두고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의 방한이 국내 반도체 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황 CEO는 오는 31일 특별세션 연설자로 나서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과의 협업 방향을 언급할 가능성이 커 업계의 시선이 쏠린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황 CEO는 15년 만의 방한 일정 동안 AI 생태계 구상을 밝힐 예정이다. 이번 APEC CEO 서밋은 전 세계 1700여 명의 기업인들이 참석하는 민간 경제포럼이다. 글로벌 AI 산업의 향방을 가늠할 무대로 꼽힌다. 특히 황 CEO는 대만 TSMC와의 협력으로 AI 슈퍼컴퓨터를 구축하겠다고 밝힌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국내 기업들과의 연대 가능성이 주목된다.
삼성전자는 5세대 HBM3E 공급을 앞두고 있고, 6세대 HBM4 개발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이미 HBM4 양산 준비를 마쳤고 엔비디아와 물량 협상에 들어갔다. 엔비디아는 내년 하반기 출시 예정인 차세대 AI 가속기 ‘루빈’에 HBM4를 탑재할 계획이다. 이번 황 CEO의 연설 이후 진행될 미디어 행사에서는 국내 반도체 업체들과의 협업 구체안이 언급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서밋에는 황 CEO 외에도 ▲맷 가먼 AWS CEO ▲사이먼 칸 구글 APAC 부사장 ▲사이먼 밀너 메타 부사장 ▲안토니 쿡·울리히 호만 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 ▲추쇼우지 틱톡 CEO 등이 참석해 AI 시대 전략을 공유한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도 참석해 오픈AI·오라클과 함께 추진 중인 5000억달러 규모의 초대형 AI 인프라 프로젝트를 논의할 예정이다. 삼성과 SK가 여기에 참여 중으로, 매달 90만장 규모의 고성능 D램이 필요하다는 추산이 나온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사와 스시 공식 페이스북 캡처
반도체 시장에서는 황 CEO의 방한과 맞물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흐름에도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관측됐다. 특히 전날 최고가를 기록했던 두 회사는 이날 장 초반 약세로 돌아서며 삼성전자는 9만9850원, SK하이닉스는 52만2000원으로 거래됐다. 외국인 매도세가 이어지며 단기 차익실현이 주가 조정을 이끈 것으로 풀이된다. 코스피는 이에 따라 장중 4000선을 내줬다.
다만 실적 전망은 여전히 긍정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이번 주 사상 최대 규모의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매출 24조8683억원, 영업이익 11조5584억원으로 사상 첫 10조원 돌파가 예상되며 일부 증권가는 12조원 초과를 전망한다. 삼성전자는 매출 86조원, 영업이익 12조1000억원을 잠정 발표해 ‘12조 클럽’ 동시 입성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AI 확산에 따른 HBM 수요 급증이 반도체 실적 호조의 핵심 동력이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DR4 8Gb 가격은 6.30달러, DDR5 16Gb는 7.535달러로 집계돼 모두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낸드플래시 제품 평균 가격 역시 전월 대비 10.58% 상승했다.
트렌드포스는 구글, AWS,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글로벌 상위 8개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의 내년 설비투자가 올해보다 24% 증가한 5214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AI용 반도체 수요는 내년에도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황 CEO의 경주행은 단순한 행사 참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글로벌 AI 인프라를 둘러싼 협력 구도가 재편되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한국의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AI 생태계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