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며 질주하던 금값이 단 일주일 만에 9% 넘게 떨어지면서 지속 불가능한 랠리에 제동이 걸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은을 비롯한 귀금속 가격도 동반 하락하며 ‘에브리싱 랠리’에 대한 경계감이 커지고 있다.
27일(현지 시각) 미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금 현물 가격은 지난 20일 온스당 4381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3980달러까지 떨어졌다. 7주간 27% 급등했던 상승세가 일주일 만에 되돌려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급락을 “거품을 걷어내는 조정”으로 해석하면서 당분간 추가 하락이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세계금협회(WGC) 시장전략가 존 리드는 “현재보다 더 큰 폭의 하락이 오히려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지속 가능한 가격 수준은 3500달러 부근”이라고 말했다. 런던금시장협회(LBMA)의 폴 피셔 전 의장도 “투기성 자금이 빠져나가야 진정한 상승세가 재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금값 폭등의 배경에는 지정학적 긴장, 달러 약세, 각국의 높은 부채 수준이 자리 잡고 있다. IMF에 따르면 중앙은행들은 외환보유고 다변화를 위해 금 매입을 늘려왔으나 최근 가격 급등으로 매입 속도는 둔화했다. 금은 올해 초 3000달러를 돌파한 뒤 10월 초 4000달러를 넘어서며 연초 대비 70% 상승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투기성 자금이 랠리를 과열시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니컬러스 프라펠 호주 ABC정련소 본부장은 “금값은 단기적으로 온스당 3700달러까지 떨어진 뒤 반등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HSBC와 뱅크오브아메리카, 소시에테제네랄 등 주요 은행들은 내년 금값이 온스당 5000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측하면서도 단기 변동성 확대를 경고했다.
최근 금값 급등은 다른 자산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주식, 부동산, 가상자산, 원자재 등 거의 모든 자산이 동시에 오르는 ‘에브리싱 랠리’ 현상이 나타났다. 금값이 오르면서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경계가 흐려졌고 은값 역시 급등세를 보였다. 10월23일 기준 금값은 지난해 말 대비 57% 상승했고 은값은 69.2%나 뛰었다.
은의 경우 태양광, 반도체, 전기차 등 산업재 수요가 강해 단기 급등 후 변동성이 더 크다. 지난 21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금 선물 가격이 5.7% 하락할 때 은 선물 가격은 7.2% 급락했다. 이는 2011년 은값 폭등과 유사한 흐름으로, 금 상승이 은 투기를 자극한 뒤 급락으로 이어졌던 과거 패턴이 반복된 것이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최근 보고서에서 “금과 은 모두 아직 정점에 도달하지 않았지만, 향후 하락 시 충격은 은이 훨씬 클 것”이라며 은의 12개월 목표가격을 65달러로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금의 장기 상승 추세에는 여전히 힘이 있다고 본다. LBMA 루스 크로웰 CEO는 “금은 이제 단순한 안전자산을 넘어 주요 투자 포트폴리오의 중심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며 “이번 조정은 새로운 상승 국면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밝혔다.